세계일보 기사를 링크합니다.
http://www.segye.com/newsView/20180922000171
지금 일본의 작태를 지나간 역사에 빗대어 감정팔이 하듯 이야기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구한말 조선을 일본에 팔아넘긴 친일파놈들이 씨부리는 논리가 지금 경제가 어떠니 좌파가 어떠니 하면서
씨부리는 것들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번기회에 우리 스스로 자존심을 지키고 원천기술을 확보하여 쪽바리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한국경제가 되어야지 않겠습니까.... 쉽지않은 싸움입니다. 이긴다는 보장이 없는 싸움입니다. 하지만 싸울땐
싸워야 스스로 일어날 기회를 갖는게 아닐런지요... 저또한 일제를 사용했고 품질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용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할 수는 없지요. 지금부터 하지말자는 거죠... 자존심을 지키자는 거죠...
누구말 처럼 의혈단도 아니고 태극기들고 만세 운동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조금 생각하면서 돈을 쓰자는 거죠.....
북한 노동신문 소스를 신뢰하시는 군요.
극단적인 다른 주장을 하시는 극소수 할머니들이 계시지만,
위안부들의 남아있는 일기와 사료들을 토대로 살펴보면
당시 한국과 대만의 위안부들은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서 일본의 위안소에서 일했고,
그들이 자유로운 생활을 하고 돈을 많이 벌었다는 건 기록으로도 다 남아있습니다. 전시경제에서 국가가 돈을 찍어내고,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비율 강제 저축 시키고 그러던 시기였기에 돈주는 거 그렇게 문제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골의 가난한 부모가 딸을 팔아넘기거나, 한국인 모집책들이 속여서 데려가거나 뭐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지면을 통해서 광고로 모집해서 데려갔으며, 한국과 대만같은 식민지에서의 위안부는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전쟁강간과는 다르게 자발적인 의사가 있는 사람들을 데려갔습니다. 당시 조선에 있으면 꿈도 못 꾸는 돈을 벌었기 때문에 간 사람들 많죠.
물론 평생을 이 분야에서 연구하고 제국의 위안부라는 책을 출판한 박유하 교수는 출판금지 당하고 명예훼손으로 법원에서 조리돌림 당하는 중입니다.
자기네들 판타지를 적는 민중사학자들 말고 남아있는 역사적 사료에 근거해서 실제 있었던 역사를 연구하시는 즉 실증 사학을 하시는 분들은 위안부가 끌려간게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광우뻥처럼 이렇게 자극적인 내용이 쌓이고 쌓이면 사람들은 그걸 진실로 믿게 되는 겁니다.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몰골이 앙상한 사진을(사실은 그 사진이 일본판 신안염전노예 사건과 같은 것으로 일제 징용자와 상관이 없는데) 가져다놓고 이들이 강제징용자라고 거짓선동까지 하면서 국민들을 바보로 만들면서 말입니다.
지금 교보 주간 정치사회분야 베스트셀러인 반일 종족주의는 철저하게 남아있는 사료와 통계, 그리고 많은 징용자들의 실제 인터뷰를 바탕으로만 저술된 책인데 그에 대비해 민중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판타지는 광우뻥 선동하고 전혀 다를바가 없습니다.
민중사학자들은 자기네 증오의 감정에 기반해서 소설을 집필하고 있는 거고,
사료와 통계만 가지고 사학을 하는 사람들은 친일이네 뭐네 욕 먹어도 실증 사학의 방법대로 감정을 배제한채 역사적 사실관계만을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증 사학을 했다는 이유로 친일매국노라고 욕먹는 거죠. 아니 객관적 사실을 논하고 증명하는 학문에 도대체 왜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야 되나요? 일제 치하도 아닌 지금 한국에서 일본에게 일부러 유리한 내용을 쓰면 그 실증 사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할게 뭐가 있나요? 전국민의 욕이란 욕은 다 처먹죠. 그 사람들은 욕을 처먹든 말든 그냥 남아있는 역사적 사실관계가 증명되는 자료만을 가지고 사실관계만을 서술한 겁니다.
한국과 똑같이 식민지배를 받았던 대만은 국민들이 일본을 상당히 좋아합니다. 걔네들은 가공된 반일세뇌교육을 받은 적이 없거든요.
토지대장을 전부 뒤져봐도 민중사학자들이 주장하듯 40%의 토지를 수탈 당한 적도 없고,(토지사업을 실시하는데 자발적 신고를 하지 않은 미신고토지는 일단 "국"자로 찍어놨어도,(그게 초기에 40%) 그 이후 자기땅이라고 신고하면 다 돌려줬습니다.)
당시 신문과 쌀 선물시장의 기록들을 살펴봐도 쌀을 수탈해간게 아닌 일제가 일본으로 돈을 주고 사간 겁니다.
일본이 얼마나 자본주의의 역사가 깊은데, 무식하게 저걸 수탈해가요.
당시 엄청나게 늘어난 곡물 생산은 일제가 개량품종을 들여오기도 했지만 값을 쳐주고 사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쌀은 당시에도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일반 서민들은 시장에 내다팔고 그 돈으로 더 많은 양의 잡곡을 사먹었죠.
풍수지리설이 없는 일본에서는 한국에 토지측량을 위해 심을 박은 거지 민족의 정기를 끊으려고 쇠말뚝을 박지도 않았고요.
일본이 토지측량을 위해 심을 박은 걸 쇠말뚝을 박았네 그러는데 지금도 측량하려면 기준점이 필요해요.
당시 일본이 만든 주소지가 얼마전 한국에서 길거리 이름으로 바꾸기 전까지 사용되었고,
대한민국 법원은 50,60년대 만들어진 거는 토지 실효주로 인정 안해줘도 일제시대 만들어진 토지대장부에 원주인은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민중사학자들 주장대로 40%의 토지가 수탈당했다면 해방이후 일제에게 빼앗긴 땅을 돌려달라는 소송이 난무했어야죠?
민중사학자분들의 문제점은 역사로 남아있는 사료에 대한 검토없이 자기들이 증오하는 대상을 악마로 설정해놓고
소설을 써내려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믿게 되었죠. 환단고기 수준의 날조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