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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Aug
반일 종족주의' 학자의 민낯.."日 극우 지원받았다작성자: Albertan 조회 수: 169
일제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공동저자인 이우연 씨가 지난달 UN 인권이사회에 직접 나가 "강제동원은 없었다"고 발표해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런데 YTN 취재 결과, 이 씨에게 UN에 가자고 제안하고 비용까지 댄 건, 일본 극우단체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한석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기자]
일본이 수출 규제 포문을 연 건 지난달 1일.
바로 다음 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UN 인권이사회 정기 회의가 열렸습니다.
낙성대경제연구소 이우연 씨가 누군가와 몸짓을 주고받더니 발언대로 갑니다.
일제 강점기 조선인은 자발적으로 노무자가 됐다며 강제동원을 부정합니다.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사 : 조선인 노무자들의 임금은 높았고, 전쟁 기간 자유롭고 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발언자 명단을 보면 이 씨는 없습니다.
애초 이 씨 순서인 15번째 발언자는 국제경력지원협회, ICSA라는 단체 소속의 한 일본인, 슌이치 후지키입니다.
위안부 문제를 통해 아베 정권의 실체를 파헤치는 다큐멘터리 '주전장'에 등장해 궤변을 쏟아 내는 바로 그 인물입니다.
소녀상 얼굴에 종이봉투를 씌우고 조롱하는 미국인 유튜버 토니 마라노의 후원자이기도 합니다.
UN에서는 일본 극우의 대변인 노릇을 합니다.
[슌이치 후지키 / 일본 극우 인사 (2017년 36회 UN인권이사회) : 정대협은 북한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그들이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이유는 일본을 헐뜯고, 돈을 요구하고, 한미일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서입니다.]
슌이치 후지키가 속한 ICSA는 UN이란 국제무대에서 위안부를 부정하기 위해 만든 비정부 기구로 포장된 극우단체로 추정됩니다.
UN에서 이 씨가 대신 발언한 이유를 물었습니다.
[슌이치 후지키 / 일본 극우 인사 : (원래 슌이치 후지키 씨가 연설하는 것으로 돼 있는데?) 그건 접수 문제로, 처음부터 이우연 씨가 말하는 것으로 돼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우연 박사가 ICSA 회원 자격으로 연설했나요?) 네 그렇죠.]
그러면서 이 씨에게 UN에 가자고 제안한 건 자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스위스 제네바 왕복 항공료와 5박 6일 체류 비용도 모두 부담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일본 극우단체가 한국 학자의 UN 발언을 기획하고 비용까지 댄 셈입니다.
[슌이치 후지키 / 일본 극우 인사 : 그의 논문을 읽고 그 내용이 정확해서 그에게 UN에 가지 않겠느냐 부탁했습니다.]
이 씨는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와 함께 일제 식민지 지배의 합법성을 강조하는 '반일 종족주의'라는 책의 저자.
역사의 진실을 전 세계에 알릴 기회라고 판단해 UN에 가자는 제안에 응했다며, 일본 극우단체의 금전적 지원을 받은 것도 떳떳하다고 밝혔습니다.
[이우연 / 낙성대경제연구소 박사 : 극우단체이건, 극좌단체이건, 역사적인 사실을 공유하고 그것을 알리는 사람과는 앞으로도 계속 (함께) 활동할 겁니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산케이 신문 등 일본 보수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됐고, 학문의 영역을 넘어 한국을 겨누는 일본 극우세력의 칼이 되고 있습니다.
요바로 위에3분은 에드먼튼시민들이제일역겨워하는 3분이네요
그토록게시판을 더럽히고도모자라 아직도 남을비방하며 쾌감을느끼는 정신이상자 같아서 전화번호남겨요
연락주시면 예약잡아서 치료해드린데요
대부분이런증샹은 가족없이 이민생활혼자사는 분들이많데요 혼자 외로움에지쳐 남에게집요하고도 남을비방하여쾌감을느끼며 게시판아님 스트레스해소할곳을못찾는인터넷 병으로 자신을좀 알아달라는 일종의 테러리스트와똑같은 증상이래요
치료받고 밝고건강한 에드몬턴샤회만들어보아요!!
여기 정신병원이에요 연락주세요 위에 세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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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 경우가 그러했듯이, 그런 강제연행에 대해서 주변의 친지라든지 이웃이라든지 이에 저항했다거나 또는 이를 목격했다거나 하는 ‘제3자 증언’(물론 학계가 널리 인정하는 믿을만한 것)이 지난 수십여 년 동안 채록된 것이 지금껏 단 한건도 확보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이는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국내외 역사전문가들이 크게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사항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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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3193
▼ 여러차례 번복한 이용수 할머니 진술 히스토리
http://www.mediawatch.kr/news/article.html?no=253196
정대협 할머니들도 고소미 잘 먹이는데,
아무리 언론이라도 언론보도에서 위법성이 조각되려면 "공인"이고 "사실관계"가 맞아야 합니다.
공인이 아니면 사실이라도 명예훼손에 걸리고,
공인이 맞더라도 기사의 사실관계 부분이 틀리다면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 됩니다.
따라서 기자 개인의 주관적 서술 부분을 제외한 사실관계에 있어서 틀렸으면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습니다.
즉, 각도기가 깨진다는 겁니다.
이 게시판에 청와대 닮아서 가짜뉴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시는 분들.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에 대해 미국이 이해했다고 한거 미국에서 정면으로 그런 적 없다고 반박했죠?
입만 열면 가짜뉴스 퍼트리시는 분들이 가짜뉴스 운운하는 거 기가 찹니다.
끌려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지금 방송에서 떠드는 이용수 할매 같은 사람은
진술의 내용을 수십번 번복해왔습니다. 가장 처음 진술은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를 건네주었기 때문에 기뻐하며 따라갔다." 였습니다.
네덜란드령 동인도였던 인도네시아 지역에서의 전쟁과 중국과의 전쟁중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전쟁 강간이 발생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는 지면을 통해 모집한 한국/대만의 식민지 위안부와 다르고(포주/모집책들에 의한 취업사기/인신매매는
존재했으나 딸을 팔았던 부모/포주/모집책 거의 모두 한국 사람입니다. 당시 신문을 봐도 그렇습니다.)
이들은 반세기 가까이 조용하다가 갑툭튀로 나왔습니다.
해방후 1965년 한일회담에서 국교 정상화를 위해 한국정부가 요구한 조건이
전쟁 막바지 갑자기 패망하며 못 받은 징용인들의 미불임금협상이 주된 것이었고
군위안부는 이때 전혀 논의되지도 않았습니다.
정말 정대협 주장대로 군인들에게 그 많은 여자들이 성노예로 강제로 끌려갔다면
왜 해방 직후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회담에서는 논의되지도 않았고, 반세기 동안 조용하다 이랬을까요.
왜 이렇게 많은 여자들이 성노예로 끌려가는데 가족과 친지의 저항흔적이 보이지 않나요?
1944년 법적인 강제절차를 밟은 징용보다 더한,(징용공들은 강제연행이 아닙니다.
현재의 한국징병제와 같은 거부시 법적처벌이 존재하던 징용입니다.)
조선의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갔다는 군위안부문제가
어째서 한일수교를 위한 회담장에서는 전혀 논의조차 되지 않다가
일제시대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일제시대를 산 사람들이 많이 죽은,
해방후 반세기나 지나서 갑자기 튀어나오기 시작한 걸까요?
남자 징용공들과 마찬가지로 1944년부터 강제징용되었던 여자징용공들 근로정신대
를 위한 단체인 "정대협"에서부터 해방후 반세기가 지나서 이런 말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정작 "진짜들"이신 "위안부할머니들의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에서는
양국정부에서 보상금 뿌리면 받고 빨리 끝내길 바라는데 정대협은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 사과와 배상도 더러운 돈이라고 안 받습니다.
정부의 시민단체지원법에 따라 막대한 세금이 정대협에 지원되고 있으며
매달 수천만원의 후원금이 들어옵니다. 네 그렇습니다.
오죽하면 정대협은 위에서 언급한 "위안부할머니들의 모임 세계평화무궁화회" 할머니들에게
"당신들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안부할머니들을 역사의 무대에 앵벌이로 팔아 배를 불려온 악당들"
이라는 소리까지 들었겠습니까.
또한 이우연 박사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의 기간동안
39년의 모집, 42년의 관알선, 44년 9월부터의 (법적강제성을 띈) 징용으로 책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당시 일본으로 가면 높은 소득이 보장됐기에
1939년 이전에 이미 일본으로 건너가있던 조선인이 170만명 수준이었습니다.
강제동원(연행,와서 팔짱끼고 끌고가는 거)은 없었고 강제적 법적절차와 따르지 않는 경우
지금의 징병제처럼 사법적 처벌의 강제성을 띄었다는 건데
연합뉴스에서 이것을 정확하게 이야기 안해서 정정보도도 냈었습니다.
이건 책에도 자세히 설명되어 있는 내용이고
YTN기자는 물론 그 쉽게 적으려고 노력한 책을 읽어보지도 않았겠지만
책은 식민지배의 합법성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인 동화정책속에서도 일본 참의원 선거등에
참여하지 못하게 한 정치적 차별 등이 존재했다고 말하며
한 나라의 주권을 강탈한 것 자체는 잘못이지만
그 기간동안 사법권도 없는 국가처럼 야만적행위로 다스렸다고 가르치고
있지도 않았던 토지/쌀 수탈설등 허구를 지어내 가르치고
이러한 허구들을 동원해 일본을 공격하는게 잘못되었고 세계인들의 공감을 사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법체계 없이 지배계층이 꼴리는대로 다스린 건 조선입니다.
민법,상법,시행령 등 23개의 법률이 들어온 건 일제시대 때입니다.
조국이 구역질 나는 책이라고 반일 종족주의를 까자 이영훈 교수가 조국에게 반론하며 이렇게 묻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조국 교수의 전공분야는 형사법이군요. 그래서 묻습니다. 한국에서 형사제도, 형법제도가 근대화하는 것은 언제의 일입니까? 모를 리가 없는 문제이지요.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관련하여 한 가지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도면회 교수가 2014년에서 출간한 <한국근대형사재판제도사>라는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