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협상을 할때는 협상 대상자의 심리를 잘 파악하여 내 주장에 대해
상대방이 동의할 수 있게 설득을 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과정중에 하나가 유명한 책이나 논문등의 자료를 인용하는 방법이 쓰인다.
그럴 경우 대개는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다.
그런데 협상이라 함은 당사자간의 이익과 불이익를 따져야 하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완전한 승리를 가져갈 수 없다.
흔한 국가대 국가, 회사대 회사, 회사대 노동조합, 개인대 회사 등등 많은 것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런 관심도 없고 이해관계도 없는 일반인들을 선동할 목적으로 그런 자료를
인용한다고 하면 과연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어 갈까 의심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그냥 자기 잘난 맛에 '나는 이런 책들도 읽어 봤으니 니들은 내말을 따라야해
안따르면 인간도 아니야' 라고 하는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그저 한가지에 꽂히면
방사선에 오염된 쪽발이 마냥 온 세상을 더럽힐 것임이 자명하다.
그런 쪽발이들이 아직도 설치고 다니는 이 시국이 참 한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조들이 피와 땀으로 이 땅을 지켜냈고,
나라와 국민들을 버리고 전쟁의 사지에 몰아 넣은 이승만이를 4.19혁명으로 몰아내고,
18년간의 독재속에 나라를 위한 답시고 모든 민주화 세력들을 고문하고 핍박하던 박정희 시대를 거쳐,
80년 민주화 운동과, 87년 대투쟁, 98년 IMF, 그리고 최순실과 그 똘마니들을 축출하고
모든 국난을 슬기롭게 극복한 우리 국민이 자랑스럽다.
그런 국민을 욕보이는 한심하고 불쌍하기 짝이 없는 쪽발이 놈들의 농간에
선량한 국민과 동포들이 이간질 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내가 무슨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엄청난 권력과 재력을 가진 놈도 아니지만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우리와 같은 옆집 아저씨들 때문에 지금껏 버텨왔고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다.
쪽발이 왜구 세놈은 똑바로 행동해라 쪽발인지 한국인인지.
그게 아니면 목적이 확실한 650원 짜린지...
650원짜리라면 너그러이 용서를 해주마 (가난은 죄가 아니다)
일본이 지옥이며 후쿠시마가 지옥의 문이란 것을 모르냐???
니네 나라 쪽발이 나라 걱정이나 해
일본산 농수산물에서 방사선 수치가 높게 나온다드라
혹시 일본에서 니네 부모가 택배 보내주는 것 있으면 꼭 가려 먹어라
외부피폭보다는 내부피폭이 더 무서운 거야
내 전공이 방사선 비파괴검사라 아주 잘알거든... 조심해라
니 온몸이 눈에 보이지 않는 구멍으로 뚫려 있을거다
그리고 대한민국 걱정은 하지마 그런 걱정 안해도 5천만 국민들이 잘해내고 있어
벌레는 몇마리 안돼
1~2년내로 왜구들도 다 송환시켜줄께 벌레들이랑 같이
올림픽 응원 잘하고... 그거라도 성공해야 되니까
GSOMIA는 연장 안한다드라 안보 신뢰가 걸린다고 해서 안하다니까 다른데 찾아봐라
니 덕에 잘 놀았다. 다시는 대한민국 까지마라
아프리카 식민지들에게는 국가대 국가로 배상이나 공식사과조차 한적 없습니다.(기금조성/난민 돕기 뭐 이런 거 빼고)
전쟁의 패전국은 승전국에게 전쟁배상금은 주지만(국제 사회 힘의 논리죠)
국제사회에서 식민지 국가에게 국가대 국가로 사과하고 배상하는 의무는 없습니다.
전세계 거의 모든 미개국들이 당시 일본을 포함한 몇몇 서구열강들(영,프,스,포,이 등등)에게 식민지배를 받았는데
그 서구열강들은 식민지지배에 대해 국가대 국가로 배상하거나 사죄하지 않았습니다.(몇몇 공식적 집단학살의 케이스에
대해서만 유족들에게 국가대민간차원에서 한정적으로 배상해준 사례는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대만/한국같은 식민지에서 지면으로 정식모집한 위안부들말고,
중국,네덜란드 같은 전쟁을 수행한 국가에서 전쟁중에 전쟁강간이라는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전쟁강간 이런 것은 확실히 잘못이 맞고요.
그런데 중요한 포인트는, 조선은 애초에 일본과 전쟁을 한적이 없습니다.
총칼이 무서워 호의호식을 보장받은 고종이 바지사장들인 대신들을 시켜 조약에 싸인을 시키고
피한방울 안 흘리고 나라를 넘겨줬습니다.
그래서 미군의 도움 아래 싸우다가 점령당했던 동남아 국가들과 달리
샌프란시스코 조약 때 승전국의 위치에서 배상금을 달라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조선이 피를 흘린 거라면 합방 이전 동학농민운동 때
조선왕조가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청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였을 때
일본군이 일방적으로 동학농민들을 제압한 거나
합방뒤에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을 탄압한 거 정도가 있겠죠.
그런데 독립군에 한정해서 봤을 땐
러시아가 자유시에서 독립군에게 했던 짓이 객관적으로 가장 심하죠.
그때 러시아에게 독립군이 궤멸되어버렸으니까.
일제는 일본정부의 예산 중 막대한 부분을 조선의 행정/사법/교육에 투입하여
조선에 대해 식민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정래가 아리랑에서 지어냈듯 토지수탈을 위해
토지조사사업을 하며 4000명을 즉결처형하거나 그런 건 없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교과서에서 가르쳤던 40% 토지수탈 자체가 없었고요.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약간 설명하는 글을 올린게 있는데 삭제당했었네요.
일제치하는 조선과 다르게 재판이라는 근대적 사법체계가 있는 상태였습니다.
어느 쪽을 믿든 댓글 작성자분 마음입니다만
한국에서 평소 듣고 보던 것 기준으로
쓰신 생각 가지는 거 그게 사실 상식입니다.
민중사학자들은 실증사학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서
이영훈 교수처럼 당시 신문을 다 읽고, 고문서 다 읽으며
말이 서로 다른 인터뷰도 교차검증해가며 사료들의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자신의 증오에 기반해서 역사를 써내려갔기 때문에
그 역사를 배우신 대부분의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는게 정상입니다.
저는 현재 동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제적/군사적 파트너와의 미래를
특정정치세력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의 산을 동원해
의도적으로 증오심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경계했을 뿐입니다.
더이상 글이나 댓글을 쓰지 않는다 하였지만 저한테 직접 대댓글을 다셨으니 답변드렸습니다.
일본은 한국,대만에 대해서 식민지화를 시키고 있었는데 전쟁말미 1944년부터 한국인에 대해 "자국민"으로서 법적 강제성을 띈 징용을 실시합니다. 이미 일본 본토에서는 훨씬 이전부터 강제징병,징용이 행해졌는데 한국인은 전쟁말미에 "자국민"으로서 동원령이 떨어진 겁니다. 그 이전을 돌아보면 1938년부터 있었던 육군특별지원병 제도는 세계식민지사에 없었던 제도로서 식민지내에서 군을 양성하는 제도 즉, 장교, 하사관을 조선에서 뽑았습니다. 정치적으로 황군화 목적도 있었지만 1938년-1943년간 1만6천여명 모집에 80만명이 넘게 지원했습니다. 강준만 저서 "한국 근대사 산책 10 - 창씨개명에서 815해방까지"라는 책에 리콴유가 한말이 있습니다.
"내가 처음 본 한국 사람들은 일본 군복을 입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한국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다. 그 한국인들은 일본군이 싱가포르를 점령할 당시 이끌고 온 두 외인부대 중 하나였으며, 다른 외인부대는 타이완인들로 구성됐었다. 일본군을 돕고 있던 한국인들은 몹시 거칠게 행동했고, 일본 군인들만큼이나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
2차대전 후 전범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조선인은 148명이었습니다.
-관련 증언들은 불쾌감을 느끼실까봐 생략하고
이에 대해 더 이상 길게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첨언드리자면
일제 점령 이전의 당시 조선은 서양에 있던 민족주의란게 아직은 일반 백성들 사이에 생기지 않았던 중세 왕정국가였습니다-
당시 일본에서 일한 조선인들, 위안부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래서 가난에 벗어나고자 한 당시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 모병공고에 입대를 자원했던 것입니다.
1944년 강제동원령이 떨어진 징용 시기에도 월급은 지급되었지만
전쟁 패망의 혼란의 시기에 못받고 조선으로 넘어간 사람들의 징용보상금 문제가 65년 한일협정 보상금의 주된 골자입니다.
인도, 버마 및 유고슬라비아도 초대되었지만, 참가하지 않았다.[4] 인도는 조약의 일부 조항이 일본에 대한 주권과 자국의 독립을 제한한다고 여겼다.[5] 인도는 1952년 6월 9일 《일본과 인도 간 평화조약》이라는 별도의 조약을 맺었다.[6]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은 영국과 미국의 견해 차이로 초대받지 못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국가가 존재하지 않고 추축국의 식민지였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초청 대상국이 아니였다.[7] 이탈리아는 반파시스트주의자인 피에트로 바돌리오 내각이 종전 직전인 1945년 7월 14일에 대일 선전포고를 하였지만, 초대받지 못했다.[8] 파키스탄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국가로서 존재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본과 항쟁을 벌인 영국령 인도를 계승했다는 이유로 초대를 받았다. 포르투갈은 전쟁 당시 자국의 영토였던 동티모르가 일본에 침략을 당했으나, 전쟁에서 중립을 유지해 초대받지 못했다.
이유가 저는 개인적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일제치하 강점기? 우리 스스로가 포기한 나라여서 일본왜구에게 내어준 땅도 아니고
일제침략을 그 누구도 원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슬프지만 그 시대
우린 일제에게 대항할 힘도 무기도 없어서 그저 무기앞에 맨몸으로 나라를 되찾으려 싸웠고 수 많은 우리
민족이 총칼앞에 쓰러져 나갔다는 사실...
그래서 지금에 우리가 대한국민이라는 나라에서 살수 있었던건 아닐까여?
님은 진짜 정체성이 뭔지 궁금해 집니다
분노하실 자유 있습니다.
하지만 지성인이라면 객관적 사실에 기초해서만 분노하면 되지
광우병처럼 누군가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낸 이야기들에 분노를 하시면
스스로의 영혼을 그 사람들의 꼭두각시로 바치는 셈입니다.
당시 한국은 500년간 같은 민족끼리 노비로 만들어 마음대로 부렸으며
예쁜 여비는 주인의 성노리개였습니다. 들키면 마님에게 여비가 죽임을 당하곤 했죠.
심지어 주인이 그들을 죽여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습니다.
노비들은 마음대로 사고 팔수 있는 거래의 대상이었습니다.
이것은 땅의 이용권을 가졌던 소작농에 가깝고
법적권리가 존재하던 중세유럽의 농노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조선의 노비에게는 법적인 권리가 없었고, 진정한 의미의 노예였습니다.
한때는 노비가 40%에 육박하기도 했다는데
구한말 조선은 아직 지금의 우리가 생각하는 "민족국가"라는 자부심과
민족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존재하지 않던 중세적인 왕정국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민족주의는 당시 서양에서도 발생한지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고요.
말씀하신 것들에 대해 짚어보자면
노비의 나라, 조선왕조 아래에서 고통받던 민초들은
당시 조선인 100만명이 가입한 일진회를 통해 조속한 합방을 청원합니다.
100명이 아닌 100만명입니다.
양국간에는 전쟁도 없었고, 왕은 대신들에게 명하고 뒤로 숨어서
대신들에게 그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해방이전까지 일본에게 왕족 대접을 받으며
일본천황 다음 높은 세비를 받으며 잘먹고 잘살았습니다.
그 당시 일제에게 넘겨줬던 조선이 지금의 한국과 같은 민족적 정체성이 존재하는
근/현대 국가였나? 그 당시 일본에게 넘겨졌던 조선은 민족이라는 정체성이
아직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일반적이지 않았습니다.
짐이 곧 국가인 왕정국가에서 총칼 들고 싸우기 무서웠던 왕이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일제에게 백성들을 넘겨준 것이 한일합방입니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 그 일제치하에서
노비제가 법으로 강제로 폐지되고,
한국의 GDP의 80%가 일제로 수탈되었다는 민중사학자들의 거짓주장과 다르게
일본 행정예산의 막대한 부분이 당시 식민지화 시키던 한국/대만에 투입되어
서구식 근대적 행정/사법/교육제도를 수립하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북한이랑 통일을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투입될 재정은 어마하겠지만 당장은 북한에게 뽑아먹을게 있겠습니까?
그게 그 당시 조선인들의 급격한 수명증가와 쌀생산증가(상당부분 돈받고 수출),
인구증가의 통계로 나타났던 것입니다.(여러 통계자료들을 첨부하면 또 삭제당할까봐 스킵합니다)
피지배계층인 민초들에겐 오히려 조선시대보다는 먹고 살만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 안에서 극소수의 독립운동가들은 핍박 받았습니다.
하지만 민족국가라는 의식도 일반화되지 않은 조선에서 태어난 대다수 사람들이나
일제시대 태어난 대다수의 민초들은
스스로 조선인이라는 의식보다 일본인이라는 의식이 있었고
그래서 1938~1943년 모병에도 50:1의 경쟁률로 지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근대적 사법/행정/교육 체계가 사회레벨에서 하나도 훈련되어있지 않았던 조선이
일제치하 없이 그냥 조선 왕정체제로 계속 가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급격한 근대화를 이루는게 가능했을까요?
일본 또한 메이지유신으로 단시간 급격히 근대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주장하는 부류들이 있는데 아닙니다.
수백년간 서양과 교류해왔고 조선 수준으로 심한 지배층에 의한 수탈이 없이
사유재산이 나름 인정받고 시장경제가 돌아가던 나라입니다.
백성들 사이에서 수백년간 그러한 사회적 관습이 심어져있던 나라라는 겁니다.
거의 지금의 아프리카 수준이었던 당시 조선이 중간단계를 건너뛰고
급격한 산업화를 이루는게 가능했다? 아닙니다.
그 당시 왕과 양반들 꼴리는대로 백성들을 다스리고 서당에서 천자문이나 배우던 조선에
식민지 영구 동화 목적을 가졌던 외세에 의해 수십년간 서구식 행정/사법/교육 체계가
심어졌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쉬운 예로 1세기 넘게 지배를 받고 미개국에서 小영국처럼 되어버린 홍콩을 보시면 됩니다.
일제치하에서 한국은 연평균 3.7% 정도의 경제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당시 일제로의 쌀수출과 거래과정에서 업자간의 신용/선물거래도 많았고,
이병철 같은 이들도 삼성상회를 설립해서
이러한 수출거래 과정에서 업자로서도 많은 돈을 벌고 사업을 확장했습니다.
역사적 배경이 다르지만 한국/대만 둘다 동시대 일제식민지배를 받았는데
왜 한국은 반일이고, 대만은 친일 성향을 띌까요?
대만은 한국과 같은 조총련과 친북인사들의 조직적 반일선동이 없었습니다.
한국도 65년 한일협정 이전까지 실제 일제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 많았던 시기에
지금과 같은 양상의 반일감정은 없었다고 합니다.
65년 한일협정 당시 남한-일본의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던
북한과 친북계열이었던 조총련이
한일협정의 징용보상금과 관련되어서 징용은 노예노동이었다 국교정상화 반대 등을 주장하며
그때부터 온갖 선동을 시작했으며
인혁당도 일제시대를 살아보지도 않은 전국의 대학생들을 부추겨 한일국교 정상화를 반대했습니다.
(인혁당 관련 최근에 반세기나 지나서 증인도 증거도 남지 않은 사건
가져와서 억지로 무죄때리긴 했지만요
형사사건의 유죄선고는 매우 조건이 까다로운데 지금같은 디지털시대도 아닌 당시의 사건을
증인들도 죽고 사라지거나 살아있어도 기억도 가물가물한 반세기가 지난 걸 들고와서 재심하면
명확한 목적성을 띈 재심이었다고 밖에 볼수가 없습니다)
그뒤부터 한국에서 점점 더 반일감정이 강해져왔던 겁니다.
이러한 국가대 국가의 원한은 세대가 지날 수록 옅어지기 마련인데
그 시대를 실제 살았던 사람의 수가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오히려 반일감정이 증폭되어왔다는 것입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일제해방 직후보다
오히려 그 시대를 겪지 않았던 세대들 사이에서
그 뒤에 점점 더 반일감정이 증폭되어져왔다는 사실이?
겪어보지도 않은 세대에게 누군가가 그 감정을 조직적으로 심어왔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한가지 우리 독립군은 자유시 참변으로 궤멸당했고,
설령 그렇지 않았다고 가정하더라도 당시 독립군 규모로는
일제를 몰아내기는 불가능했습니다.
이승만이 미국에게 일제와 투쟁하던 광복군의 규모를 엄청나게 뻥튀기해서 말했지만
중국 국민당 정부군이 통수권을 가지고 있던 한국 광복군의 규모는 300여명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갈 수 있는 건
일제에 핵폭탄을 떨어트려주고
그 이후 625에 참전해준 미군덕입니다.
제 정체성을 물으신다면 전 흔히들 말하는 태극기 든 애국보수가 아닌
자유주의 성향이라서 작은정부인 보수당을 지지하는 사람이기에
애국주의/민족주의라는 환상이 아닌 그냥 드라이한 사실관계를
스스로 판단하고 말한 것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상당수 보수당 지지자들도 제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점심시간 30분이나 할애해서 적었는데 저도 밥은 먹어야 하기에 이만 글을 줄이겠습니다.
+ 추가로 말씀드리자면 이번 조직적 반일선동이 터지기 전까지
오래전 제가 파악한 이러한 사실관계들을
전 주변인/넷상에서도 일언반구 이야기하지 않아 왔습니다.
제 생각을 누군가에게 강요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그런데 조직적인 반일선동이 자기 파괴적이 되는 걸 보고
그리고 그 선동의 상당부분이 사실과 거리가 먼 것을 보고
반일선동들을 그냥 보고 있기는 좀 힘들어서 글을 썼습니다.
제가 여기다가 위안부 관련 몇가지 사실관계를 올렸던 건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 광우병/한미FTA 때처럼 거짓말 퍼다나르며
극단적 반일감정 선동 좀 하지마라는 차원에서 올린 거지만
솔직한 제 심정은 이미 지나간 과거에 대해선 별관심없어요.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기도 마찬가지고
저는 딱히 나이 많은 상당수의 노인분들처럼 애국주의 보수가 아닌
자유주의/작은 정부 성향이라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이라
누군가를 우상화하고 싶지도 않고 상징성에 대해 변호하고 싶지도 않아요.
그들에 대해 누구의 주장을 믿든 그건 알아서들 판단할 문제죠.
과거는 배울 점만 배우면 되는데 과거에 얽매여서 과거를 살아간다면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는지라.
일제시대를 살아보지도 않고 마치 일제식민시대 일본신민으로 살아보기라도 한 마냥
자기파괴적 증오심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누구하고는 다르죠.
물론 625에 대해 단 한번도 사과 안한 김씨가문은
피해보상도 하고 사과도 수십번 했고 1945년 이후 군사적 충돌도 없는 일본하고는 달리
최근에도 계속해서 우리 병사들 죽이고 핵개발하고
미사일 쏴대며 남한 위협하고, 삶은 소대가리 욕하니까^^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인지라 이건 케이스가 다르죠.
앞 전글의 제 마지막 댓글에 대댓글로 한 말씀하셨더라고요.
그 댓글에서 저는 과거/현재 사회주의 정권들과 다름없는
자신이 전지전능하다는 여느 사회주의자들처럼 "치명적 자만"에 빠진 문정권이
수천만 단위 시장참여자 모두의 팽팽한 이권을 조정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가진 정부의 계획/설계/명령에 기반한 사회주의 경제시스템이
재산권/생명권 보호의 사법체계 아래 시장참여자들 각자의 이기심과 효용이 가격이라는 신호체계에 의해
조정되어있는 시장의 자생적 질서를 오히려 파괴한다는 논지로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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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 결과는 계약만료 비정규직들 해고.
미국/캐나다시스템이 한국과 같고, 해고가 어렵던가요?
미국이 레이건 때 해고를 쉽게 만들었어도 실질적 근속연수는 변동하지 않았습니다.
주52시간 - 저녁이 있는 삶 이야기하지만 속내는 일자리 나눔 취지죠.
결과는 기업실적 악화, 근로자 소득줄고, 고용은 늘지 않음.
이건 적어도 기존 정부규제 풀어서 고용의 유연성이라도 확보했으면 약간 늘었을지도 모르는데.
현재는 기업입장에서 신규고용의 비용과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최저임금 1만원 소득주도성장 - 산업혁명 초기에야 하루종일 일해도 농민, 도시공들 소득은 적고 가난했지만
꾸준한 기술의 발달로 생산성이 늘며 근로자,농민들 소득도 같이 늘어났습니다. 그게 실증된 역사고요.
스위스는 최저임금제가 근래에야 생겼고, 싱가폴,북유럽 국가들은 최저임금제가 없습니다.
그 국가들은 임금이 시장에서의 생산성으로 결정하게 놔두는 겁니다.
그래서 싱가폴은 동남아에서 몰려온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난하죠.(자국민들이랑 임금격차 상당합니다. 부작용이랄까.)
다른 가진 자에게 빼앗아서 가난한 자에게 그만큼 나눠주고 화폐유통속도v를 올려보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의 취지는 알겠는데
시장에서 실질적으로 가장 큰 소비는 기업단위의 투자고,(여기서 기업의 현금보유액이 아닌
사내유보금으로 선동은 할 생각 마시고, 귀찮게 또 설명해야 하니까)
임금을 주는 영세자영업자도 소비자인 건 마찬가지고,
최저임금이 올라서 해고된 사람도 소비자인 건 마찬가지죠.
최저임금 급격히 올리고 가장 취약한 1분위 소득이 급격히 추락한 건 다들 아실거고.
30년대 대공황 때 정부개입해서 유효수요를 창출하겠다는 취지로
세금 거두고 공공정책펴는 케인지언의 재정정책은 실효성이 없었고
근본적으로는 당시의 금본위제에 얽매여 본위통화가 줄어들던 문제에 대한
Fed의 미흡하던 대응이 야기한 시중의 통화량 지속적 축소, 디플레이션의 악순환 문제였고,
이것은 유럽의 불안정한 정치상황으로 미국으로 대거 금이 유입되고
전후로는 Fed에서 좀더 유연한 통화정책을 펼치며 해소된 겁니다.
정부에서 유효수요를 끌어올린다고 세금 거둬서 수십조 뿌려서 일회성 노인 일자리는 늘었지만
현재 한국에서 민간기업의 일자리는 오히려 사라지고 있죠?
민간에서 세금을 거두면 그만큼 민간에서 일자리는 사라지고 정부의 효율은 민간보다 낮은데
경제학원론만 봐도 이딴 짓은 안합니다.
예를 더 들어야 되나? 너무 길어지내. 조국처럼 까도 까도 계속 나오는 양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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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땐 그나마 제도권 내에서 용인이 가능한 서구식 신좌파세력이 당내 주류였지만
노무현 이후엔 대학시절 NLPDR 막스식 폭력혁명 운동한 막스/주사파 운동권 세력
그것도 전향선언도 안한 애들이 당내 주류로 나선건 알고 지지하시는 거겠죠.
그러니까 남민전으로 깜방갔던 김남주처럼 공산주의 민족혁명에 방해되는 민족반동세력 2백만 정도는
철저히 죽여야 한다고 주장했었던 그런 부류들이 지금 더불당 당내주류라고요.
그리고 참... 여기 분위기가 그저께부터...
중립지대로 옮겨서 하고 싶지만
여기 교민들 앞에서 좌좀분들 까는 재미로 하는 건데
굳이 일부러 옮겨서 할만큼 그럴 가치도 없어 보이고
당신이 앞으로도 거짓말을 퍼다나르며 선동을 하든 말든
당신의 선한 마음 이젠 충분히 알겠으니
토착왜구는 이제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선의에서 그러시는 거잖아요.
그 선의가 세상을 지옥으로 이끄든 말든 제가 알바 뭐겠습니까.
하던대로 열심히 선동하세요
미국소 먹고 광우병에 걸린다고 글을 올리시던
한미FTA하면 미국 경제식민지되서 나라가 망한다고 글을 올리시던
진술을 수십번 번복하는 사람들의 주장을 가져와서 올리시던
그게 당신의 뜨거운 애국심이 시킨 것임을 알기에 전 이만 닥치렵니다.
대.깨.문.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