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손이 귀한 우리집은 명절에도 친척들로 북적이지는 않았지만, 설이 다가오면 온 가족이 차례 준비와 손님 대접을 위한 음식 장만으로 분주하였다. 온 가족 모여 앉아 송편을 빚을 때마다 할머니는 항상 내가 빚은 송편을 칭찬해 주셨다. 신이 난 나는 온갖 다른 모양을 만들어 댔고, 엄마는 장난 그만하라고 핀잔을 하셔도 할머닌 “우리 인령이는 송편을 예쁘게 빚으니 예쁜 딸 낳겠다”며 웃으셨다. 할머니께 새해 인사를 위해 방문하는 친척들과 동네 어른들, 아버지 지인들의 행렬이 거의 한 달은 이어졌으니, 어른들께 인사만 잘해도 세뱃돈을 꽤 쏠쏠하게 챙길 수 있었다. 떡국을 질리도록 먹는 것이 불만이기는 했지만, 잣과 호두를 넣고 돌돌 말아 동그랗게 자른 상주곶감과 분홍색 유과를 골라 먹는 재미가 좋았다.
캐나다에 온 후로 안부 전화를 드릴 때마다 엄마는 “만리타국에서 혼자 뭐하니? 한국으로 얼른 돌아와라.”고 말씀하시곤 한다. 아무 친지없는 캐나다 생활이 외롭기는 했으나 아이들에게는 정말 좋은 환경이었고, 나 역시 캐나다에서 새롭게 커리어를 잘 다지고 있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 걱정과 젊은 시절, 어릴 적 추억에 대한 그리움은 내게 캐나다를 타국으로 만들었고, 은퇴하면 다시 한국으로 가지 않을까하는 막연한생각을 오래도록 했었다.
업무 차, 그리고 부모님을 뵐 요량으로 일 년에 한 번쯤은 한국을 방문하는데, 캐나다 생활 10년을 기점으로 점점 한국이 더 이상 내 고향이 아닌 타국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내가 살던 동네는 재개발 바람이 불어 알아볼 수 없는 딴 동네로 변해버렸고, 대학 시절 누비고 다녔던 학교 앞 풍경은 더 이상 어디도 익숙한 곳이 없었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다 외국으로 흩어져 버렸고, 죽고 못살던 언니랑도 예전만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다. 1,000원이면 한 끼 때울 수 있던 김밥 천국도 요즘은 둘이 가서 별 것 안먹어도 만원 이상 나오고, 조금 출출하면 부담없이 사먹던 길거리 오뎅, 떡볶이 포장마차는 더 이상 눈에 띄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요즘은 한국에 도착하면 시차 적응에 일주일은 걸리는데, 캐나다로 돌아오면 바로 다음 날 출근을 할 만큼 내 몸의 시계는 마운틴 타임으로 셋업 되었다.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은 나의 가장 소중한 뿌리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강조해 왔다. 지금도 코스트코에서 일면식없는 사람들에게서 한국말이 들려면 그저 반갑고, 캐나다 뉴스에서 Korea라는 단어만 나와도 귀가 쫑긋하고 관심을 갖게 된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 캐나다화 되어가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뚜렷한 이유없이 팔기 싫던 한국 아파트도 제작년에 처분하였다. 캐나다에서 가급적 짐을 많이 늘이지 않고 살려고 해왔으나, 이 번에 가구를 새로 들여 더 이상 이사가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짐이 늘어버렸다.
2019년 새해는 레디움 핫스프링의 콘도에서 맞았다. 이브 날인12월 31일 좋은 와인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TV를 보며 새해 카운트 다운을 했다. 다음 날은Invermere에 있는 호수에 얼음낚시를 하며 새해 아침을 맞았다. 추위라면 질색을 하던 내가 이 추운 겨울에 얼음 낚시를 갔다라고 하면 믿을 이가 많지 않을 듯하다. 35km넓이의 광활한 호수가 트럭이 호수 위를 달릴 정도로 꽁꽁 얼어 자연 스케이트장을 만들고 있었고, 얼음 낚시를 위해 설치된hut에 낚시 도구 일체가 포함되어 있어 다른 준비가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얼음 위 파이어 핏에 불을 피워 고기를 잡으면 그 자리에서 바베큐를 할 수도 있다. 낚싯대를 잡고 세 모녀가 하도 수다를 떨어 고기가 다 도망간 탓인지, 몇 시간 동안 우리는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물고기 대신 마시멜로만 구워 먹었지만 정말 좋은 시간이었다. 다 자란 아이들은 엄마에게 2019년 목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예전과 같이 근사하고 원대한 목표를 세우진 않지만, 올해도 새해 목표를 세워본다.
캐나다에 와서 한국인이든 캐나다인이든 좋은 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다. 외국에 가면 한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는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참으로 안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 온 사람들에게 본인이 초기 정착 시기에 겪은 어려움과 실패담을 나누고,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도우려고 한다. 사교적인 성격이 못되어 회사 업무 외엔 사람을 만나는 일이 거의 없는데도 돌이켜보면 고맙고 소중한 사람이 무척 많다. 캐나다 직장을 다니고 캐나다 사람들과 한참을 어울려 보아도, 깊은 정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역시 같은 한국인이다. 16년을 살아보니 캐나다기 살 만한 곳 임에 틀림이 없다. 이제 나는 캐나다를 내 고향으로 만들려고 한다. 좋은 사람들과 가족같은 인연을 만들어 가고, 캐나다에서의 노후를 새롭게 계획하는 것이 설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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